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키예프 루스 (문단 편집) == 경제 == [[벨리키 노브고로드|노브고로드]], [[스몰렌스크]], [[체르니히우|체르니고프(체르니히우)]], [[키이우|키예프(키이우)]], 류베치, [[프스코프]], 폴로츠크, 비텝스크 같은 키예프 대공국의 주요 도시들은 대개 스칸디나비아 반도와 흑해를 잇는 수상 교통로에 건설되었다. 특히 흑해와 가까운 [[키이우|키예프]]와 스칸디나비아와 가까운 [[벨리키 노브고로드|노브고로드]]는 국제 무역의 중심지였다. [[서유럽]] 출신 여행자들은 키예프 루스에 많은 도시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록하면서 [[루스]]를 '도시의 나라'라고 칭했다. 상인들의 권리는 '스메르드'라고 불리는 자유민 농민에 비해 사회적 지위가 높고 부유했는데, 상인을 살해할 경우에는 자유민 농민을 살해한 경우의 벌금보다 2배 이상 금액을 지불해야 했다. 상인들의 권리가 높았던 이유는 이들이 키예프 루스의 전사 계급이기도 했으며, 대외 무역으로 많은 부를 축적했기 때문이었다. 키예프 루스의 상인들은 [[동로마 제국]], 중부 유럽, 스칸디나비아, 이슬람 칼리파조와 교역했다. [[동로마 제국]]에는 밀랍, 꿀, 아마, 가죽, 대마, 귀금속, 무기, 갑옷을 주로 수출했으며 이슬람 칼리파조에는 주로 노예와 모피를 수출했다. 오늘날 스페인의 [[후우마이야 왕조]]의 노예 대부분은 키예프 공국에서 중부 유럽의 [[유대인]] 상인들을 통해 수출된 [[슬라브족]] 노예였다. 키예프 공국에서는 [[화폐]]를 거의 주조하지 않았는데, 이슬람 칼리파조와 [[동로마 제국]]에서 유입된 화폐가 많았던 데다가 자체적인 농업과 공업이 빈약했기 때문이었다. 대신 11세기 이후부터는 '''[[흐리우냐]]'''라는 화폐 단위가 생기는데, 이것은 400그램짜리 은괴였다. 흐리우냐를 절반으로 자른 것을 '''루블 흐리우냐''' 또는 줄여서 '''[[루블]]'''이라고 했다. 은괴에는 중량 표기와 함께 공작의 인장을 새겼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